등산

지리산 백장암-수청산-서룡산 산행

산꺽정 2015. 3. 3. 06:47

 

삼월에 내리는 눈은 솜이불처럼 포근하다(2015년 3월 1일 일요일. 지리산 실상사 백장암-수청산-서룡산)

 

나는 아직도 무게감이 좀있는 솜이불에 익숙하다.

요즈음 나오는 화섬솜이나, 양털솜, 비단솜이 들어간 이불은 너무 가벼워서 덮은 같지가 않아서 싫다.

날씨가 포근할 때 내리는 눈은 솜이불같은 느낌이다.

 

지리산 백장암 뒷산인 서룡산을 오르기로 하고 대구릏 출발한다.

그런데 대구를 벗어나자마자 88고속도로 주변은 온통 눈밭이다.

고속도로는 제설작업을 해서 주행하는데는 지장은 없다.

 

지리산나들목에서 내려 백장암으로 들어가면 가까운데 우린 함양나들목서 내린다.

왜냐하면 좀 멀지만 지안재를 넘어서 지리산 제1관문 오도재 구경도 하고, 일행은 백장암으로 보내고, 난 오도재서 내려서 삼봉산-투구봉-서룡산을 꺼구로 종주를 할 요량으로 24번 국도를 탄다.

다시 오도재가는 1024번 지방도를 따라 좌회전해서 지안재에 오른다.

온통 눈천지이지만 제설작업이 그런대로 되어 있다.

지안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오도재로 간다.

오도재는 제설작업이 전혀 안되어 있다.

되돌아 나오니까 제설차가 이제서야 스쳐 지나간다.

오도재하고는 인연이 없는가 보다.

 

인월을 거쳐 60번 도로에서 백장암까지 꼬불꼬불한 사찰 진입도로가 생각외로 제설작업이 되어 있어서 차로 백장암까지 수월하게 오를수 있다.

백장암에는 국보한개와 보물한개를 가지고 있다.

국보10호인 삼층석탑은 각층마다 몸돌인 사면에 다양한 인물상조각이 되어 있어 굉장이 미려하다.

보물40호인 석등은 디자인이 간단하다.

명품이 그렇듯이 복잡하지 않고 선이 바르고 단순한게 흠잡을대가 없다.

 

암자 좌측으로 오른다.

가파르다.

나무에 붙은 눈이 바람에 흩날리고, 계속 눈이 내리고. 하옇튼 원없이 눈속에 파뭏인다,

가지능선을 올라서 우측 주능선으로 방향을 바꾼다.

수청산을 지나서 가면 갈수록 신설에 미끄러워서 지친다.

눈이 계속 내리니까, 백장암 주차장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야 하는 찻길이 걱정이 된다.

서룡산 800M를 앞두고 되돌이 한다.

 

주능선상의 움퍽파인 구덩이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는다.

눈을 깔고 앉아서 먹어도, 술이 두어순배 돌아가니 추위가 가신다.

 

다시 백장암,

800고지위에는 눈구름모자를 쓰고 있는걸 보니 계속 눈이 내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래는 흐리긴 하지만 날씨는 좋다.

 

백장암진입도로 와 큰도로와 맞물리는 백장교옆에 있는 변강쇠 백장공원을 둘러보고 귀가를 서두른다.

대구에 뒷풀이가 준비되어 있다.

 

지리산조망산인 서룡산에 올랐다 지리산구경도 못하고 되돌이하니 섭섭하다.

하지만 눈속에서 신선놀음을 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아래 실상사 백장암

 

 

▽아래  등로 지피에스 트랙

 

▽아래  구글로 편집

 

▽아래  지안재

 

▽아래  지안재를 넘으면 함양군 휴천면이다

 

▽아래  백장암입구 시누대나무. 눈의 무게가 느껴진다

 

▽아래  대웅전 앞. 탑과등 그리고 부도

 

▽아래  탑과등

 

 

▽아래  부도. 절에 부도는 절을 비켜서 뒷쪽 숲이나 입구 길옆에 있는데 여긴 대웅전 앞에 있다

 

▽아래  백장암 탑. 국보 10호

 

 

 

 

 

▽아래  보물40호 등

 

 

▽아래  대웅전 옆 먹는물

 

▽아래  눈세상

 

 

 

▽아래  가지능선

 

 

 

 

 

▽아래  주능선

 

 

 

 

▽아래  서룡산 800M 앞두고 폭설에 돌아셨다

 

 

▽아래  다불유시

 

▽아래  백장암 진입도로입구 백장공원

 

 

 

 

 

 눈속에  가파른 오르막과, 눈속에 맛있는 술을 나누어 마신 라이프 동료들께 감사합니다.

특히 차량제공과 운전과 산행을 같이한 라이프 회장님께 고맙구요.

 

처가가 지리산 백무동인 박감사님 부럽소.

지리산하면 남명 조식선생님인데 그분은 처가가 김해라던데.

선생님은 지리산을 12번 올랐답니다.

 

실제로 61세 되던 해 남명(南冥)은 천왕봉(天王峰)이 바라보이는 지리산 자락인 산천(山淸) 덕산(德山)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산천재(산천재)라는 서당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다.

아예 산 속으로 들어가 그가 그토록 원했던 지리산의 기상을 닮고 산(山)의 덕(德)을 체득하고, 산의 기운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남명(남명)의 이러한 바람은 그가 남긴 시(詩)와 산문(散文)에서 확인된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을 예 듣고 이제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메요 나는 옌가하노라

 

위 누운글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빌려온글(두류산-지리산)

 

 

 같이한 산우(라이프 회장. 부회장. 감사. 구조대장. 나)